신안 자산어보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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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에 대하여
영화 〈자산어보〉는 2021년 3월 31일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사극 영화입니다. 설경구와 변요한이 주연을 맡아 각각 흑산도로 유배된 실학자 정약전과 입신양명과 성리학적 이상을 좇는 청년 창대 역을 연기하였습니다. 본 작품은 상업 영화로서는 드물게 흑백 영상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자칫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고요하고 서정적인 영상미를 통해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냈습니다.
영화 속 흑산도의 수평선과 자연 풍경은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조선 시대라는 배경과도 절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감독의 탁월한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작품의 제목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실제로 저술한 어류도감의 제목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다만 ‘玆山漁譜’를 두고 ‘자산어보’로 읽어야 할지, ‘현산어보’로 읽어야 할지를 두고 오랜 시간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학자들 사이에서 학술대회와 논문 발표 등으로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자산어보’로 읽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이 우세한 상황입니다. 정약전 역시 책 서문에서 “흑산(黑山)이라는 명칭이 어둡고 음침하여 집안에서는 편지를 쓸 때 주로 ‘玆山’이라 썼다”고 밝히고 있어, ‘玆’ 자가 ‘흑’과 같은 뜻이라는 점에서 이를 ‘자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 또한 이러한 논란을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 제목을 ‘자산어보’로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약전은 누구인가
정약전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관료로, 조선 실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대중에게는 흔히 실학자 정약용의 형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이는 정약용의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 때문으로 보입니다.
정약전은 1758년(영조 34년) 경기도 광주 마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이었고, 어머니는 해남 윤씨로 문인 화가 윤두서의 손녀입니다. 윤씨는 정재원의 둘째 부인이며, 정약전과 그의 두 동생인 정약종, 정약용을 낳았습니다. 특히 정약전과 정약용은 나이 차가 4살로, 매우 우애가 깊은 형제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1783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90년 순조 탄생을 기념한 증광별시에서 병과로 급제하며 관직에 올랐습니다. 정약용보다 1년 늦게 출사하였기 때문에 관직 서열은 낮았지만, 정조의 신임으로 병조좌랑과 같은 청요직을 역임하기도 하였습니다.
정약전 형제는 1784년 형수의 장례식에서 이벽을 만나 천주교 교리를 접하게 되었고, 한때 천주교 신앙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신앙과의 거리를 두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정부는 천주교를 위협적인 외래 사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1791년 진산에서 윤지충이 신주를 불태운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반감이 커졌습니다. 윤지충은 정약전 형제의 외사촌으로, 그의 처형은 이들에게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정조가 서거한 뒤인 1801년, 순조 즉위 초기에 본격적인 천주교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신유박해라 하며, 당시 천주교와 연루된 인물들이 대거 체포되고 처벌받았습니다.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 역시 연루되어 국문을 받았으며, 셋째 형제인 정약종은 끝까지 신앙을 고수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반면 정약전과 정약용은 일찍이 신앙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참작되어 유배형으로 감형되었습니다.
실제로 정약종의 집에서 압수된 문서 중에는 ‘이 사실을 동생 정약용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문구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이는 그들이 천주교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처럼 영화 〈자산어보〉는 단순한 인물의 전기적 재현을 넘어, 조선 후기 사상의 흐름과 사회의 갈등, 그리고 인간적 교류를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